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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스토리] 잊지 말아야 할 통증...中 ‘위안부’ 생존자를 찾아서

출처: 신화망 | 2016-08-16 11:31:15 | 편집: 이매

   이곳은 산시(山西)성 위(盂)현 상서(上社)촌 펑포산(風坡山) 일본군 포루의 폐허이다(8월 11일 촬영)

  [신화망 베이징 8월 15일] 중국 침략 기간 일본군은 펑포산에 포루를 3채 짓고 거점을 세웠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거점에는 위안부들이 여러 회에 걸쳐 수감되었다.

   기자는 일본 패전 투항 기념일인 8월 15일을 맞이해 산시 여러 지역에 있는 몇몇 중국침략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집을 방문했다. 평균연령이 90세를 넘어선 노인들은 건강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그녀들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역사와, 자신들의 죄행을 직시하게 하는 것은 이 생에서 최대이자 최후의 소망이라 말했다.

   ‘위안부’는 인류역사에서 암흑한 한 폐이지로 남았다. 일본군이 1937년에 ‘위안소’를 대규모로 설치해서부터 1945년 투항하기 까지의 8년 동안, 아시아에서 피해 받은 여성은 최소 40만명에 이른다. 전쟁이 끝나고 70여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고통과 굴욕은 끝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직까지도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채 ‘강요성’을 시종일관 부정하면서 몇십년이 흘러서도 아물지 않은 그녀들의 상처를 계속 되새겨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중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속에서 잇달아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위안부’ 피해자수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등 8개 국가와 지역의 민간조직들은 올해 5월 유네스코(UNESCO)에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징용한 역사사실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줄 것을 공동으로 신청했으나 일본정부와 민간 우익단체들은 이를 무례하게 저해했다.

   굴욕과 고통속에서 침묵하거나, 나서서 성토하거나를 불구하고 ‘위안부’ 생존자들은 아직까지도 일본의 한마디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촬영/잔옌(詹彥)]

원문 출처: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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